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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D를 데리러갔다 [이상한 동물원⑨]
 글쓴이 : 행복이
조회 : 231  
청주동물원은 사자 ‘바람이’로 대중에 많이 알려졌다. 실내동물원의 비좁은 공간에서 전시·체험용으로 살아왔던 사자 바람이를 동물원으로 데려오면서다.
그 당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라’라 이름 붙여진 미니 말과 작은 새장에 갇혀 있던 천연기념물 독수리 ‘하늘이’도 함께 구조됐다.
이후에도 실내동물원에 남겨진 동물은 있었다. 바람이의 딸, ‘D’라고 불리는 암사자다. 검색해 보니 과거 TV 동물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다. 바람이는 2017년 짝인 암컷 사이에서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한 마리는 폐사했고 다른 한 마리가 D다.
바람이는 올해 만 스무 살이다. 7년 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청주동물원으로 구조됐을 때 많은 시민이 바람이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백수의 왕으로 아프리카 평원을 누렸어야 할 자유로운 야생동물에게 공감했을 것이다. 바람이가 청주로 오면서 비었던 사육장에 D가 대신 살게 되자 바람이의 딸도 구조해달라는 시민들의 청원이 넘쳐났다.
바람이가 오고 몇달 후 기사를 통해 실내동물원에서 지내던 백호랑이와 흑표범이 폐사했고 일부 동물들은 같은 대표의 다른 사업장인 대구의 동물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동물들의 건강이 염려돼 대구를 몇 차례 방문했다. 어느 순간 동물들이 전보다 활기가 있다고 생각됐다. 알고 보니 동물원 대표가 과거 그곳에서 일했던 사육사 부부에게 동물 관리를 부탁했고 부부는 과거 정들었던 동물들을 외면할 수 없어 제주도의 생업까지 접고 달려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부부는 아픈 동물들이 생기면 나에게 연락을 해왔고 이후 뜻이 맞는 수의사들과 의료봉사를 하러 가곤 했다.
몇달이 지나 사육사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D를 아빠 바람이가 있는 청주동물원에 보내자고 동물원 대표를 설득했고 허락을 얻었다고 했다. 당시 전기요금을 못 낼 정도로 동물원 운영이 힘들었기에 부부의 진심이 고마웠던 대표가 그들의 요청을 들어줬을 것으로 짐작됐다. 부부는 D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동물원 대표가 그동안 야생동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고 동물들을 괴롭게 한 건 사실이지만 D의 여생을 생각해 소유권을 이전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청주 시장님께 보고드리고 D가 임시 위탁된 강릉의 동물원을 방문했다. D는 어려서 순치가 돼서인지 사람에게 경계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궁금한 듯 유리 벽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실내에 갇혀 지내던 D를 생각하면 강릉의 동물원은 나아 보였다. 사자가 있기에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붕의 반은 환봉으로 되어 있어 공기와 햇빛이 들어오고 비를 맞지 않는 안쪽 공간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리를 지어 살아야 할 사자가 홀로 지내는 것이 한계였다. 이송 과정을 생각하며 방사장과 연결된 안쪽 내실을 확인했다. D가 자발적으로 이송 상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자 위치가 중요한데 놓을 공간이 나오질 않았다. 또한 이곳으로 올 때 D가 상자에 들어가는 것을 몇 시간 동안이나 거부해서 결국 마취했다고 전해 들었다. 다행인 것은 노령동물인 바람이와 달리 젊은 개체라 마취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낮았다.
사자는 국제 멸종위기종으로 관할 환경청에 양도·양수 허가를 받아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서류를 접수하고 2주가 지나자 허가가 나왔다. 강릉의 동물원과 이송 날짜를 8월20일로 정했지만 더위가 문제였다. 한여름에는 동물들의 응급진료가 아니면 마취를 진행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계절을 나야 하는 야생 사자는 더위를 피하고자 밤이나 새벽에 사냥하고 낮에는 나무 그늘 밑이나 물가에서 피부를 통해 열을 식힌다. 발 전체를 사용해 걷거나 뛰면 높아진 혈압으로 체온이 오르기에 사냥하지 않는 평소에는 발끝을 세워 다닌다고 한다. 그러나 마취상태에서는 몸의 항상성이 떨어져 오른 체온을 조절하기 어렵게 된다.
이송하는 날의 현장 시나리오를 계획해 본다. 야외 방사장은 햇빛이 비치고 주사기를 불어서 날리기는 어려운 구조라 D를 내실로 불러들여 마취 주사를 놓아야 한다. 그러나 마취 주사를 맞은 경험이 있는 D가 주사를 피하고자 뛰기 시작하면 체온이 급상승할 수 있다. 내실 온도를 낮추기 위해 이동형 에어컨을 가져가야 하고 D가 마취된 후에는 체온을 떨어뜨릴 젖은 대형 수건과 선풍기를 준비해야 한다. 대기하고 있는 화물차 내부에는 냉기를 가둬두었다가 D를 옮겨 완전히 회복되면 청주로 출발한다!
아빠 바람이와 딸 D가 재회하는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지만 따로 지냈던 두 사자가 서로 알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무리를 이루어 사는 사자라 모여 사는 것이 이익이다. 홀로 남게 된 사자의 심리적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안락사를 해주는 외국 동물원 기사를 본 적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D가 오는 것은 바람이와 도도에게도 좋은 일이다.
사자들이 모여 살기 전에 마련돼야 할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간이다. 바람이가 암컷 도도와 서로를 익히는 데 거의 반년이 필요했다. 암수 2마리보다는 3마리가 경우의 수가 많아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또 하나는 근친 문제이다. 바람이와 딸인 D의 근친교배가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들의 정서상 이유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근친에 의한 열성 유전자 발현이다. 그만큼 신체적 결함이 있는 동물이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수컷 바람이의 불임수술이 더 간단하지만 노령의 바람이는 마취가 쉽지 않아 암컷 D의 난소 절제술을 하는 것이 대안이다.
마지막 하나는 D의 건강과 번식 제한이다. 새끼를 갖지 않는 암컷 사자는 호르몬에 의한 자궁축농증의 위험이 높아진다. 여러 논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청주동물원에 살았던 암사자가 자궁축농증이 생겼는데 자궁이 파열되면서 복강이 오염되어 폐사한 적이 있었다. 불임수술은 D의 건강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간혹 다른 수컷 사자와 새끼를 갖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다. 앞으로는 번식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에 대해 보호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작년 동물원수족관법이 허가제로 변경되었고 개인동물원에서 사자, 호랑이를 데려가 줄 수 없냐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 온다.
요즘은 영상으로 해외 야생동물도 실시간으로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현재 한국시간 오후 6시. 유튜브로 ‘아프리카 라이브 캠(africa live cam)’을 보고 있다. 아프리카는 오전 11시, 웅덩이에서 코끼리가 물을 마시고 있다. 또 다른 라이브 캠에서는 오후 9시의 뉴질랜드 인스타 팔로워 해안절벽을 비춘다. 절벽 둥지에는 앨버트로스가 알을 품고 있다.
최근 청주동물원에서 국립생태원이 보유한 토종 야생동물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무인카메라에 찍힌 야생동물의 무심한 얼굴에 마음은 평화롭다. 동물원 담장 바로 옆에 조그만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으려 한다. 개울물이 어는 겨울에는 야생동물들의 긴요한 음수대가 될 것이고, 여느 계절에는 새들이 목욕하며 깃털을 손질하러 올 것이다. 이곳에 라이브 캠을 설치하면 토종 야생동물 연구도 하고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도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운 좋게’ 산에 있는 청주동물원. ‘동물원’이지만 야생동물 서식지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