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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어떻게 생겨? 아들 질문에 ‘성교육 과외’ 고민이 시작됐다
 글쓴이 : 행복이
조회 : 201  
[주간경향] 대구에 사는 박모씨(42)는 올해 1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에게 ‘성교육 과외’를 받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에 대한 아이의 궁금증은 커지는데 학교에선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직접 성교육을 해주기에는 막막했다.
아이가 작년부터 ‘아기는 어떻게 생기냐?’고 계속 물어봤어요. 그동안엔 결혼하면 생긴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모가 결혼하고 나니 이젠 ‘이모는 결혼했는데 왜 아이가 왜 안 생겨?’라고 묻더군요. 그 무렵, 여성 성기를 비하하는 욕설을 배워와 종종 내뱉기도 했고요.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죠.
주로 ‘소그룹 성교육’으로 불리는 성교육 과외는 2~6명의 아이를 모아 성교육 업체 강사를 초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씨도 아들 친구들의 부모들에게 제안해 ‘그룹’을 만들어 수업을 듣게 했다. 이후엔 성에 관한 호기심이 더 많은 편이라서 그룹 대신 ‘일 대 일’ 과외를 세 번 더 받았다. 네 차례에 걸친 성교육 과외에 든 비용은 총 115만원. 박씨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가 (과외를 통해) 성기 비하 욕설의 뜻을 알고 놀란 것 같더라고요. 이제는 그 욕설을 하지 않아요. 몸의 소중함과 상대 존중에 대해 배운 다음 성관계가 뭔지도 알려주셨어요. 남자, 여자가 성관계하는 그림을 보여주셨다고 하는데, 저도 투명하게 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으면 아이는 다른 경로로 찾아보려 할 테니까요. 사실 제가 가장 원한 건 ‘절대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걸 인식시키는 것이었어요. 욕설을 자제하는 걸 보니 그런 측면의 인성교육도 잘 진행이 된 것 같아요.
1990년대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아우성)란 구호를 내걸고 텔레비전에 자주 나왔던 스타 성교육 강사 구성애씨를 기억하는가. 그룹 과외 성교육은 구씨가 세운 ‘푸른 아우성’이란 기업이 2010년대 초반 고안했다. 이후 다른 기관과 강사들이 잇따라 ‘과외 성교육’에 뛰어들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시장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여성주의 관점으로 본 청소년 성교육의 시장화’(김선아·이화여대 석사학위논문·2023)에 따르면 한 성교육 기업의 경우 2022년 전체 유료강의(3463회)의 75%(2662회)가 과외 성교육이었다. 또 다른 성교육 기업 역시 2022년 과외 성교육 횟수가 4년 전보다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10대 가해자가 다수 포함된 N번방 사건 등이 공론화되면서 자녀의 성교육을 고민하는 부모가 늘었지만, 학교는 성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아 사교육 시장이 이 틈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과외 성교육을 받게 한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서 임신을 어떻게 배웠는지 아이에게 물어봤어요. ‘정자와 난자가 만난다’ 이상은 못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학교에서 성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가지고 집에서 대화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학교에선 여전히 성에 대해 쉬쉬하고 있으니까 답답한 거죠.
■학교 성교육, 매년 15시간씩 하고 있다?
올해는 학교 성교육이 의무화된 지 24년째 되는 해다. 초·중·고교의 성교육은 2001년부터 연간 10시간씩(성폭력예방교육 2시간 포함) 진행돼 오다가 2013년부터는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15시간(성폭력예방교육 3시간 포함)으로 늘었다. 매해 10~15시간은 적지 않은 시간이지만 많은 이들이 ‘성교육을 별로 받아보지 못했다’라고 기억한다. 왜 그럴까. 성교육은 독립된 교육시간이 배정돼 있지 않은 ‘범교과 영역’이기 때문이다. ‘성’은 보건, 체육, 생물, 가정 등의 교과 수업 때 가르치거나 창의적 체험활동(특별활동)을 통해 가르치게 돼 있다. 통상 별도로 이뤄지는 성폭력예방교육을 제외하면 유명무실하게 흘러가기 쉬운 구조다.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교육부는 연간 15시간에 이르는 성교육에 대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 성취기준이 없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2015년 <학교 성교육 표준안>과 교사용 지도서 등 교육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러나 잘못된 성폭력 통념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여성단체와 교육단체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여성은 한 특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반응하는 데 비해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들과 널리 성교할 수 있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등 남성 성욕은 본래 여성보다 왕성하며 제어하기 힘든 것이라는 암시가 담긴 내용이 대표적이다. 발표 후 몇 차례 수정을 거쳤음에도 여성들은 외모를 가꾸는 데 공을 들여야 하고, 남성들은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등의 성차별적 예시 내용은 그대로였다.
결국 교육부는 2018년 성교육 표준안 개편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과정 편성에 대한 업무는 국가교육위원회로 이관됐기 때문에 성교육 표준안 같은 것을 교육부 차원에서 다시 만들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대신 성교육 수업에 도움을 주는 학습자료를 만드는 것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학교 성교육 수업에 성교육 표준안을 적용해야 하는지 묻자 성교육 표준안은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이었고, 지금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다고 답했다. 사실상 폐기 상태란 의미다.
■금욕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학교 성교육이 ‘정자와 난자가 만난다’는 피상적 성 지식 전달이나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로 상징되는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201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백래시, 혐오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학교와 공공기관 등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교육을 해온 이유정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 ‘백래시’가 여러 영역에서 있었는데 교육계에선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향해서 쏟아졌다고 생각해요. 사실 많은 학교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하고 싶어하세요. 하지만 경기도 도서관에서 성교육·성평등 도서 2500권이 보수단체의 민원 때문에 사라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생각지 못한 민원이 들어올 때가 많습니다. 학교와 교육청 입장에선 신중해지는 거죠.
일부 보수단체의 ‘민원 공격’은 결국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기존의 금욕주의 성교육을 강화시켰다. 성교육 연구자들은 말한다. (성과 관련해) 대립하는 양쪽 주장 중 아무 주장에도 치중하지 않기 위한 노력, 더불어 주목을 끌 만한 지점을 담지 않으려는 노력이 강화됐다. 기존에 강조되던 ‘교육의 정치적 중립’만큼이나 성과 관련된 쟁점을 다루는 것이 금기시되며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 단위학교까지 성교육으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났다.(학교에서 섹슈얼리티를 말하라, 남미자·심에스더·이희진 지음, 학이시습)
문제는 지금 이대로의 금욕주의 성교육이 낳는 폐해다. 유엔의 교육문화과학기구인 유네스코는 다양한 연구 결과에 근거해 금욕적 성교육에 대해 이렇게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금욕 프로그램은 성행위 시작 시기를 늦추거나 섹스 횟수 및 섹스 파트너 수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욕 프로그램은 청소년의 성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잠재적으로 해로운 것으로 판명됐다.(<국제 성교육 가이드>·유네스코·2018, 이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번역판)
■포괄적 성교육은 재밌고 효과적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성교육 미래가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성행위 시작 시기를 지연시키고, 성행위 빈도와 파트너 수, 위험한 행동 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돼 유네스코가 권고하는 ‘포괄적 성교육(CES·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을 공부하고 교실에서 실천하는 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 성교육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성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교육으로 성에 관한 전인교육이자 시민교육, 인권교육, 관계맺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포괄적 성교육을 교실에서 실천해본 교사들은 학생들의 반응부터 달랐다. 교육효과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생리, 질, 음경, 사정, 동의, 발기, 대안생리대…. 22년차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수년 전부터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낱말게임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낱말카드에 쓰인 성적 개념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하면 점수를 얻는 방식이다. 모둠별로 모인 아이들은 서로서로 거들며 설명을 만들어나가고, 선생님에게 달려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이 이런 단어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A씨는 성교육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고, 아이들은 자신의 성 건강을 위해 성 지식을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면서 윗몸 일으키기를 배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이 알기엔 너무 노골적인 단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수업은 유네스코 권고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제시하는 9~12세 청소년의 성교육 학습 목표엔 이런 내용이 있다. 임신을 위한 신체의 주요 기능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예: 월경주기, 정액 생산 및 정액 사정), 월경주기와 정자의 사정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한 것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다.(<국제 성교육 가이드>·유네스코·2018)
청소년들에게 ‘성적 동의’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도 있다. 이유정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의 개념을 물으면 ‘동의 없는 성관계’라는 답변은 빠지지 않지만 ‘강요에 의한 동의’도 동의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권력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일상 속 권력 관계에 대해 토론한 사례를 소개했다. 친구나 애인에게 일방적으로 내가 맞춰주고 있단 느낌 때문에 우울한 적은 없는지 등을 묻자, 나도 다른 친구 눈치를 보면서 싫다고 말 못 한 적이 있다. 그때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다 등의 자연스러운 답변이 이어졌다고 한다.
‘권력 관계 인식’ 역시 포괄적 성교육에서 권고하는 교육 내용이다. 유네스코는 12~15세 성교육 학습 목표 중 하나로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어떻게 연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수 있다., 젠더 규범과 젠더 고정관념이 어떻게 연인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떠올려 볼 수 있다.(<국제 성교육 가이드>·유네스코·2018)
소설 수업을 통해 포괄적 성교육을 실천하는 국어 교사들도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성평등국어교사 모임에서 활동하는 B씨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입체적으로 읽어보며 성교육을 한다고 했다. 현대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이 작품은 흐드러지게 메밀꽃이 핀 날 밤에 성 서방네 처녀와 관계를 맺은 추억을 평생 아름답게 간직하는 허 생원 이야기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면 ‘성 서방네 처녀’는 무조건 나와요. 그러면 성 서방네 처녀 입장에서 소설을 다시 읽어보게 하죠. 놀랍게도 성 서방네 처녀 시점은 작품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아요. 성 서방네 처녀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집에서 쫓겨나 고생하며 살았는데, 허 생원과 성관계를 맺은 그 밤이 과연 아름다운 기억일까? 의문스럽지만 확인할 수 없는 거죠.
성평등국어교사모임의 또 다른 교사는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김 첨지의 아내 시점에서 다시 쓴 <운발 없는 생>이란 작품을 읽히는 수업도 한다. 김 첨지가 사온 설렁탕에는 아픈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만, 김 첨지는 아픈 아내를 발로 차며 소리를 지르고 설렁탕을 내던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B씨는 100년 전의 문학작품 속에서 폭력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오늘날의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을 연결해 토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포괄적 성교육을 한국의 교실에서 적용해볼 수 있도록 수업자료를 만들어 배포한 초등학교 교사들도 있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는 2021년 <학교 성교육 다시, 쓰기>라는 이름의 성교육 수업안을 만들어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성교육을 ‘다시 써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N번방 사건은 디지털 성폭력과 결합 된 뿌리 깊은 성착취 문화를 수면 위로 드러냈고, 그 중심에는 청소년들이 있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중략)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아이들을 비롯한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 바꿈 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그 힘은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학교 성교육 다시 쓰기학교 성교육 실태 및 인식조사 분석을 통한 성교육 제언’·교육비평·2021)
■정책의 울타리가 없다
다수의 교사가 이처럼 성에 관한 시민교육, 인권교육, 전인교육으로서의 포괄적 성교육을 시도해 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정책은 찾기 힘들다. 좋은 성교육을 고민하는 많은 교사가 악성 극우단체의 표적이 되어 홀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거나(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C씨), 선생님을 ‘꼴페미’라고 부르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학생들 앞에서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현실(고등학교 국어 교사 B씨)에 무력감을 느낀다.
교육청 차원에서 국제표준인 포괄적 성교육을 시도하며 ‘울타리’가 돼준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울산시교육청은 고 노옥희 교육감이 이끌던 2020년 포괄적 성교육 도입을 선언하고 관련 수업안을 교육청 차원에서 만들어 배포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집중학년제 등을 운영했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사업에 대해 포괄적 성교육은 학교나 교사 차원에서 개별 추진한 것이 아니므로 학교에 항의 전화가 오더라도 교육청으로 돌려 교육청 담당자가 응대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는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돼 대부분의 포괄적 성교육 프로그램이 의무가 아닌 권고로 운영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교육청의 가장 빛나는 사업 중 하나였는데 자랑스럽게 내세우면 공격이 들어오더라고요. 성교육이 예민한 문제가 돼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의 성교육을 고민하다 사교육 업체의 문을 두드렸던 한 양육자의 고민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학교의 ‘쉬쉬하는’ 성교육이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에서라도 좋은 성교육을 찾는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성교육이 시장화되는 현상 앞에서 우리는 성교육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체성 확립, 타인과의 관계맺기, 사회문화 등 인간의 삶 구석구석에 성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데, 양육자의 여건에 따라 아동 청소년들이 차별적으로 ‘좋은 성교육’ 기회를 받는 것은 온당할까.
나아가 올바른 성 가치관 확립이라는 성교육의 본령을 벗어난 ‘교육 상품’이 거래되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주로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한 성교육 활동가는 ‘가해자 안 되는 교육’으로 흐르는 일부 과외 성교육 사례를 간접적으로 확인한 경험을 들려줬다. 학교 성교육 시간에 ‘누군가가 나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진 찍었을 때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한 남학생이 끼어들어서 소리치더라고요. ‘불법 촬영은 2000만원.’ 무슨 얘기냐 물었더니 과외 성교육에서 벌금 액수를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뭘 느꼈냐고 물었더니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생각했다고 해요. 돈 있고 없고, 처벌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성교육인데 뭔가 잘못된 흐름이 있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바꿀까
지금의 금욕주의적 학교 성교육이 계속된다면 아동·청소년들은 성착취물 등을 통해 성을 접하고 왜곡된 성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성교육 사교육’으로 건강한 성 가치관을 확립시켜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아동·청소년에겐 좋은 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 공동체를 변화시킬 힘은 공교육에 있다(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는 사실, 성교육의 본령을 벗어난 상품도 거래되는 현실도 생각해야 한다. 학교 성교육부터 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다.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성평등에 기반한 성교육 등을 시도했다가 극우단체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성교육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사실 보호자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제대로 된 성교육, 적극적인 성교육을 해달라고 학교와 교육청에 민원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좋은 사교육 강사를 고르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좋은 민원으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건강하고 안전한 삶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양육자와 교육자가 손잡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늘의 좋은 성교육은 내일의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학교 성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